상주 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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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주 주씨는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주이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상주 주씨는 도은공파, 박사공파, 시랑공파, 창의공파, 판서공파 등으로 분파되며, 조선 시대에 주세붕, 주명신, 주시경, 주영복, 주선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물을 배출하였다. 조선 시대에 문과 6명, 무과 10명의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경상남도 합천군, 함안군, 창녕군, 경상북도 문경시, 전라남도 장흥군, 평안북도 박천군 등지에 집성촌이 존재한다. 2015년 대한민국 인구는 22,90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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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시조 주이(周頤)는 당 덕종 때 병부시랑(兵部侍郞)을 지냈고, 786년(원성왕 2년)에 부사(副使)가 되어 신라에 왔다가 귀화하여 시위부대감(侍衛府大監), 병부령(兵部令), 상주총관(尙州摠管)을 역임하고, 상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주황(周璜)은 당나라에 들어가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고, 귀국한 이후 희강왕 때 예부경(禮部卿)을 역임했다고 한다.
3. 분파
4. 인물
상주 주씨의 주요 인물로는 조선시대 학자 주세붕, 조선 말기 의학자 주명신, 국어학자 주시경, 국방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주영복, 헌법재판소 재판관 주선회 등이 있다.
4. 1. 역사 속 인물
- 주세붕(1495년 ~ 1554년) : 주유의 5세손. 1522년(중종 17)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541년 풍기군수가 되었고, 1543년 백운동서원을 건립하여 조선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다. 1548년 호조참판을 역임하고, 1549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해주에 수양서원(首陽書院)을 건립하였다. 이후 대사성·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다가 병으로 사직을 요청하였으나 동지성균관사에 체임되었다.[1]
- 주명신 : 조선 말기의 의학자. 동의보감을 참조하여 1724년(경종 4) 의문보감을 저술하였다.[2]
- 주시경(1876년 ~ 1914년) : 국어학자. 한자 폐지와 한글 표기를 주장하며, 현대 한글과 한국어 체계를 정립하고 보급하는 데 기여하였다.[3]
- 주영복(1927년 ~ 2005년) : 제22대 국방부 장관, 제42대 내무부 장관[4]
- 주선회(1946년 ~ ) : 헌법재판소 재판관[5]
4. 2. 근현대 인물
5. 과거 급제자
6. 집성촌
7. 인구
8. 항렬자
참조
[1]
논문
한국인의 기원에 관한 중고생의 의식과 『국사』교과서와의 관계
http://www2.lib.yama[...]
Yamagata University
2012
[2]
서적
Academy of Korean Studies 상주주씨 尙州周氏
http://terms.naver.c[...]
Academy of Korean Studies
[3]
웹사이트
KOSIS
https://kosis.kr/sta[...]
2022-11-26
[4]
학술지
한국인의 기원에 관한 중고생의 의식과 『국사』교과서와의 관계
https://yamagata.rep[...]
山形大学歴史・地理・人類学研究会
2012-03
[5]
웹사이트
주씨(周氏) 본관(本貫) 상주(尙州)입니다.
http://www.findroot.[...]
2022-07-28
[6]
인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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